2024년 3월호

이동

[명예기자] 사랑하면 예전과 다르다

  • 2022-10-26 14:28:24
  • 정영미
  • 조회수 : 463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 글귀를 처음 만난 날 “연세 있으신 분이 저런 감성을 갖고 계시다니”하며 웃었다. 그랬는데 20년이 지난 요즘 저 글귀를 다시 찾으며 나는 내가 조금 늦되는 우둔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얼마전 일행들과 길을 걷다 “까르르르”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소리의 주인이 까마귀인 것을 알게 된 순간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는 누가 ‘야’하고 불러서 돌아보았는데 까마귀였다는 이야기며 까마귀가 영역 다툼에서 까치에게 쫓겨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날 이후 까마귀 울음소리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 전이었다. 사과껍질의 무게를 줄여보려고 햇볕 좋은 낮에 에어컨 실외기 위에 두었다. 그런데 그 껍질 사이에 귀엽고 동그란 엉덩이가 보였다. 동식물에 관해 잘 알고 있는 큰아들이 호박벌임을 알려주었다. 아들은 꽃이 부족해지는 가을엔 과일도 먹는다며 기온이 조금 더 떨어지는 10월 중순 이후에는 벌집 온도를 올리느라 오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이후로 베란다를 지날 땐 발소리를 죽였고, 호박벌이 사과 과육을 뭉쳐서 벌집에 가져다 놓으러 간 사이 다시 사과를 자르고 꿀물을 타서 놓았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사과를 올려놓을 수 없어서 마음이 쓰였고 벌이 비 그친 다음 날 다시 왔을 때는 가슴이 뛰었다.
이젠 오지 않지만 나는 이름을 호박이라고 붙였다. 내년 봄이 허락되지 않는 수명을 가진 ‘호박’을 다시 볼 수는 없겠지만 다른 호박이를 위해 꽃이 부족해지는 가을이면 사과를 실외기에 올려놓게 될 것이다.
나는 호박벌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꽃밭에 호박벌이 날아다니고 까마귀가 소란스러울 봄을 즐겁게 기다릴 것이다. 나의 계절은 전과 같지 않고 달라질 것이다.
김미정 / 희망북구 명예기자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