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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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이모네 수박밭 원두막에서 보낸 여름 추억

  • 2022-08-30 16:36:40
  • 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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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여름은 내게 가장 기다려지는 계절이었다. 그 까닭은 이모네 수박밭 원두막에서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모 부부는 경남 사천의 한 시골에서 수박농사를 지었다. 벼농사는 별도로 짓고 대략 1000평 정도의 밭에서 수박을 재배했는데 밭 한가운데에 원두막을 세우고 거기서 수박을 지키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개구쟁이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박을 몰래 서리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절이었다. 이모 부부는 방학이 되면 우리에게 수박 지키는 일을 부탁하셨다.
나와 바로 위 세 살 터울의 형은 이모 부탁으로 원두막을 찾아 밤낮으로 수박을 지키며 또래 이모네 아이들과 얘기꽃을 피우곤 했다.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호랑이 이야기 등 갖가지 전래 동화나 학교에서 있었던 다채로운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즉석에서 잘 익은 수박을 따서 먹었다. 이모 부부는 우리에게 수박은 실컷 따서 먹되 못된 개구쟁이들이 수박서리를 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지키라고 당부하곤 했다. 수박만 한 두 통 따가면 되는데 밭을 마구 짓밟아 농사를 망치게 한다고 수박서리를 거의 목숨 걸고 지키라고 당부하셨다.
이모네 아이와 우리 형제는 서로 잠을 바꿔 자며 군인이 불침번 서듯이 수박을 철통 같이 지켰다.
여름방학이 되면 이모네 수박 지키는 일은 연례행사처럼 됐다. 나중에 이모는 수박을 잘 지켜줘서 고맙다며 약간의 용돈을 주었다. 그로 인해 여름마다 이모네 수박밭 원두막은 즐거움과 행복이 쏟아지는 산실로 여겨졌다.
지금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해마다 여름이 오면 이모네 수박밭 원두막에서 보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다시 코흘리개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이모네 수박밭 원두막에서 보낸 아련한 추억이 있어서 삶이 한층 더 기름지다는 생각이다.
박정도 / 화명동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