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김밥
- 2025-04-25 17:58:03
- 정영춘
- 조회수 : 856

김밥
최다슬(덕천동)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기초수급자 가정보다 더 가난했던 것 같다. 기초수급자분들은 매달 쌀과 생활비를 지원받고, 아이들은 무료 우유 급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해당조건이 안 되어 혜택을 받지 못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1990년까지도 납작보리로 보리밥을 해 먹어야 했고, 소풍 날에는 김치볶음밥을 도시락으로 싸 갔었다. 다른 아이들이 김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 도시락을 들고 나무 뒤에 숨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부모님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셨고 나 만큼이나 김밥이 드시고 싶으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20대가 되어 일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내가 김밥을 만들어 부모님께 드렸을 때, 아버지는 좋아하시며 김밥을 맛있게 드셨다. 가끔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시면 내게 "그거(김밥) 그거 있나? 좀 줘라"하며 먹고 싶다 하셨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도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 김밥과 유부초밥을 만들어 드렸는데, 어머니는 80세의 연세에도 젊은 사람 못지 않게 맛있게 드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김밥을 드실때마다 “우리 딸! 김밥 장사하면 총각이 업고 가겠네!” 라며 나에게 농담을 하시곤 했었다. 몇 달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챙겨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가끔 김밥을 먹을 때마다 두 분 생각에 잠기곤 한다. 내가 싼 김밥을 맛있게 드시던 나의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다.
최다슬(덕천동)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기초수급자 가정보다 더 가난했던 것 같다. 기초수급자분들은 매달 쌀과 생활비를 지원받고, 아이들은 무료 우유 급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해당조건이 안 되어 혜택을 받지 못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1990년까지도 납작보리로 보리밥을 해 먹어야 했고, 소풍 날에는 김치볶음밥을 도시락으로 싸 갔었다. 다른 아이들이 김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 도시락을 들고 나무 뒤에 숨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부모님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셨고 나 만큼이나 김밥이 드시고 싶으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20대가 되어 일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내가 김밥을 만들어 부모님께 드렸을 때, 아버지는 좋아하시며 김밥을 맛있게 드셨다. 가끔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시면 내게 "그거(김밥) 그거 있나? 좀 줘라"하며 먹고 싶다 하셨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도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 김밥과 유부초밥을 만들어 드렸는데, 어머니는 80세의 연세에도 젊은 사람 못지 않게 맛있게 드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김밥을 드실때마다 “우리 딸! 김밥 장사하면 총각이 업고 가겠네!” 라며 나에게 농담을 하시곤 했었다. 몇 달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챙겨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가끔 김밥을 먹을 때마다 두 분 생각에 잠기곤 한다. 내가 싼 김밥을 맛있게 드시던 나의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