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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6월호] 한방 건강 칼럼-전립선 비대증
한방 건강 칼럼
전립선 비대증
해와달 한의원 윤한성 원장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서 외출이 두렵다”, “밤마다 소변 때문에 두세 번씩 잠을 깬다”고 호소하는 중년 남성들이 많다. 이런 증상이 반복된다면 전립선 비대증을 의심해야한다. 전립선은 방광 아래에 위치하며, 요도 주위를 고리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남성 고유의 외분비샘(外分泌腺)이다. 나이가 들면 남성호르몬의 변화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전립선 조직이 증식하고 요도를 압박해 배뇨 장애를 일으킨다. 연구에 따르면 40대 5명 중 1명, 60대 10명 중 7명, 70대는 10명 중 8명꼴로 발생하며, 방치할수록 수술적 치료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전립선 비대증의 주요 증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소변이 나오기까지 오래 기다리거나 줄기가 가늘어지는 배뇨 곤란, 하루 8회 이상의 빈뇨·야간뇨·절박뇨의 저장 장애, 소변 후 잔뇨감과 배뇨 후 점적(點滴)이 대표적이다. 이를 단순한 노화로 방치하면 방광 기능 저하는 물론 요로감염·방광결석·급성 요폐 등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 질환의 근본 원인을 노화로 인한 신장 기운의 쇠약에서 찾는다. 신장의 기운이 약해지면 수분 대사 흐름이 흐트러지고, 여기에 혈액 순환 장애와 노폐물 축적이 더해지면서 전립선 조직이 점차 비대해진다. 전립선 비대증은 전립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노화와 균형 실조가 반영된 질환이다.
이 질환은 환자의 체질과 증상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접근한다. 첫 번째는 열기와 습기가 아랫배와 골반에 쌓이는 습열형으로, 신장의 수분 조절 기능이 저하되면서 배뇨 통로가 좁아지고 염증이 심해진다. 소변 색이 짙고 탁하며, 배뇨 시 따끔거리고 뜨거운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는 혈액이 오랫동안 정체되는 혈어형으로, 전립선 조직에 어혈(瘀血)과 노폐물이 쌓여 조직이 굳고 비대해진다. 고인 물이 썩듯 혈액이 정체되면 만성 염증과 조직 섬유화가 진행되며, 아랫배나 회음부에 묵직한 통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가장 흔한 유형인 신허형으로, 방광의 수축·이완 조절 능력이 저하되어 전립선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한다. 소변량 감소·야간뇨 외에도 만성 피로, 어지럼증, 허리와 무릎의 시큰거림, 이명 등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한방 치료는 유형별 진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습열형에는 열기와 습기를 해소하는 처방을, 혈어형에는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어혈을 풀어주는 처방을, 신허형에는 신장의 기운을 근본적으로 보강하는 보신(補腎) 처방을 활용한다. 침 치료를 병행하면 골반 주변 혈액 순환 개선과 방광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되며, 배뇨 증상뿐 아니라 피로·수면 장애·기력 저하 등 전신 증상까지 함께 다룰 수 있다는 것이 한방 치료의 강점이다.
생활 속 관리도 중요하다. 토마토의 리코펜과 두부·된장·청국장 등 콩류 발효식품의 이소플라본은 전립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저녁 이후 수분 섭취를 줄이면 야간뇨를 낮출 수 있으며, 장시간 좌식은 전립선 울혈(鬱血)을 악화시키므로 틈틈이 움직이는 습관이 필요하다. 과로와 과음은 신장의 기운을 소모시키는 주요 원인인 만큼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2026.06.26
조회수 :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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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6월호] 희망 카툰
희망 카툰
2026.06.26
조회수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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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6월호] 아버지를 추억하며
독자수필
아버지를 추억하며
박경혜(화명동)
아버지가 영면에 드셨다. 향년 93세. 긴 세월을 견디시다 폐렴으로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IMF 외환위기,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숱한 고비를 이겨내신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폐렴 발병 후 불과 열흘 남짓 만에 세상을 떠나실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8년 동안 혼자 지내셨다. 그러다 3년 전 뇌경색이 찾아오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문 읽기를 좋아하셨고, 늘 무언가 하며 지내시던 분이라 병원 생활이 답답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색칠공부 책과 간단한 산수 문제집을 가져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폐렴이 찾아왔고, 그 희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혼자 남은 아버지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슬픔을 깊이 느낄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셨고, 고집도 강하셨다. 그래서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2년 7개월 동안 나는 매주 요양병원을 찾았다. 마트에 들러 어떤 간식을 사 갈지, 어떤 과일을 준비할지 고민하는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 일상이 사라졌다. 마트에서 바나나와 요거트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 요양병원 앞을 지날 때면 발걸음이 멈춘다. 24일마다 주문하던 고단백 영양음료도 더 이상 주문하지 않는다. 과일 코너 앞에서도 아버지 생각에 한참을 서성이다 그냥 지나친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사실. 그 부재가 이렇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이 슬픔도 조금은 무뎌질까. 다만 오늘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음속에 담아본다. 그리고 이제는 추억 속에서라도 오래도록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026.06.26
조회수 :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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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6월호] 고향신문과 회고록
고향신문과 회고록
박영춘(구포동)
10년 전, 경북 영덕에 본사를 둔 고향신문에 독도 특강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고교 시절 신광교회를 함께 다니며 학생회를 이끌었던 ‘6송’ 친구들의 단톡방에 기사를 올렸다. 쑥스러운 마음에 “허접한 신문에 한 컷 났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설광룡 선생이 댓글을 남겼다.
“허접한 것이 오히려 더 가치가 있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회고록 출간을 준비하며 지난 자료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주요 일간지 기사들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독도 특강 기사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과 노트북, 오래된 저장장치까지 모두 뒤졌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찾을 수 없게 되자 그 기사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 결국 당시 자료를 단톡방에 올려주었던 축산중학교 박종한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 선생은 신문사까지 알아보았지만, 회사 이전 과정에서 오래된 자료들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래전 설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허접한 것이 오히려 더 가치가 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문득 서랍 속에 보관해 둔 옛 휴대폰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충전해 파일을 확인하던 중, 마침내 애타게 찾던 기사를 발견했다. 그 반가움은 마치 심봉사가 눈을 뜬 것과 같았다.
이번 일을 통해 깨달았다. 사소해 보이는 기록도 시간이 지나면 한 시대를 증언하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자료 보존의 중요성과 함께 평소 중요하게 생각해 온 기증 문화의 가치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기억은 흐려질 수 있지만 기록은 남는다. 그리고 남겨진 기록은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과 마음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된다.
2026.06.26
조회수 :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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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6월호] 나의 육아 일기
나의 육아 일기
이 맛에 육아하나보다
윤혜란(라임이 어머니)
2025년 1월 24일, 예정일보다 일주일 빠르게 엄마가 되었다. 뭔가 나는 신생아를 잘 키울 수 있을거란 왠지 모를 자신감이 가득해서 남들 다 가는 조리원도 마다하고 분만 후 이틀 만에 아기를 안고 집으로 왔다.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만나고 싶었던 애틋한 마음과 근거 없이 샘솟던 자신감은 어디로 간 건지 밤낮 없는 육아로 인해 30일 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139일째 되던 날 누워만 있던 아기가 뒤집기를 했다. 되집지 못해 우는 모습을 보며 같이 속상해하고 힘들어했던 순간도 있었다. 172일 첫니가 났으며, 175일부터 쌀미음으로 이유식을 시작했다. 엄마가 됨으로써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이 겪는 감정들이 수만가지다.
울고 보채면서 말도 못하고 걷지 못할 때는 답답한 마음만 가득해서 천천히 커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나였는데, 점점 그 말에 공감하게 되는 내가 있었다. 쉴 틈 없이 종일 계속되는 육아에 피로도가 쌓여갈 때쯤 어린이집이라는 지원군이 등장했다. 고생한 엄마들을 토닥여 주는 듯이 마음 놓고 7시간을 아이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멋진 보상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라임이는 어느덧 16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와 같은 밥상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 아직 말도 통하지 않고, 여전히 울고 보채며 떼를 쓸 때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라임이가 훌쩍 커버려 엄마를 찾지 않는다면 서운할 것 같아 지금 더 많이 사랑해줘야겠다.
2026.06.26
조회수 : 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