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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쉽게 따라하기 인터넷 사용을 위한 환경 이해인터넷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정보가 존재합니다.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우편은 국경을 넘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원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것을 주소(E-Mail)라 부릅니다. 또, 필요한 파일이나 프로그램을 쉽게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흔히 ‘인터폰(Internet Phone)’이라고 불리는 컴퓨터를 이용한 국제전화, 네트웍 게임, 전자 상거래(홈쇼핑), 취업정보, 자격증 시험강좌 등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수만큼이나 무궁무진합니다.그럼 인터넷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 인터넷은 네트워크 사이의 연결(인터넷=네트워크)입니다. 인터넷에 접속을 위해서는 어떤 네트워크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컴퓨터 구입시 대부분 모뎀이 설치되어 있고 가격도 많이 내려서 큰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모뎀이란? 간단히 말해 전화망을 통해서 컴퓨터간의 정보를 주고 받는데 사용되는 필수적인 장비입니다. 인터넷의 속도는 컴퓨터 자체의 속도보다 전용선이나 모뎀 속도에 따라 결정되므로 꼭 비싼 컴퓨터를 요하지는 않습니다. 기종에 관계없이 모뎀 속도만 빠르다면 충분히 집에서도 인터넷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글 윈도우 98의 경우에는 전화 접속 네트워킹을 위한 어댑터와 TCP/IP 프로토콜이 기본적으로 설치되므로, 별도의 네트워크 환경설정 작업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al / Internet Protocal)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TCP/IP 프로토콜을 사용한다!’라는 정도로 이해하기 바랍니다. 인터넷은 원칙적으로 인터넷에 물려 있는 전용선을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까지 연결해야만 합니다. 학교나 관공서의 경우에는 인터넷 전용선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에 가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 가정의 경우 수백만원이 드는 전용선 사용료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개인 사용자들은 모뎀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 방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일반 가정에서 모뎀을 이용하여 인터넷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상업적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업체(ISP)에 가입 신청을 해야만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은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네츠고, 채널아이 등이 있습니다. 국내 주요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인터넷 사용의 환경설정은 제3부에서 계속되겠습니다. ·문의: 문화정보과 ☎309-4291~3 1999.03.25 조회수 : 685
- 민원상담실 문)당사는 12월 결산법인으로서 1999년 1월 5일자로 김해시에서 부산시 북구로 이전한 경우 1998년 법인세할 주민세 신고 납부지는 어디인지?또한 95사업연도 법인세 경정·결정이 있을 경우에는 어디에 신고 납부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답)법인이 사업장을 이전한 경우에는 지방세법시행령 제130조의 6에 의거 당해법인의 사업연도 종료일 현재의 사업장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군에서 부과하기 때문에, 귀사는 12월 결산법인이므로 1998년 12월 31일 당시 관할 시·군인 김해시에 신고 납부하셔야 합니다.또, 과년도분을 경정·결정 등을 하였을 때에도 당해 주민세의 납세의무는 결국 각 사업연도 과세기간 종료일에 성립됨으로 1995년 12월 31일 사업장 소재지인 김해시에 경정·결정 법인세의 고지서 납부기한일로부터 30일내에 신고 납부하셔야 합니다. 단 안분율 적용은 사업연도에 불구하고 결정 연도의(1999년) 안분방법에 따라 신고하여야 합니다.·문의 : 세무과 ☎ 309-4211~4 (담당자 윤태형) 1999.03.25 조회수 : 786
- 사랑의 수화교실 운영 우리구청은 대화 및 의사소통이 불편한 청각 언어장애 민원에 대해 효율적인 상담과 장애인에게 한발 더 다가서는 고객만족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랑의 수화교실'을 운영키로 했다. 구, 동, 보건소 및 복지관종사자 71명을 대상으로 한 수화교실은 오는 4월부터 6월까지 두달 동안 매주 금요일 오후 3시∼5시까지 구청 중회의실에서 실시된다. 이번 수화교실의 강의는 허홍구 부산광역시농아인협회 수화통역사가 맡게되며 강의내용은 숫자익히기, 가족관계, 요일과 시제, 계절과 자연, 흔히 쓰이는 단어 및 반대말, 혼동하기 쉬운 단어 등 일상생활에 자주 사용되는 언어들이다. 한편 구청은 유관기관 및 각 단체에도 공문을 보내 수강희망자를 접수받아 교육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1999.03.25 조회수 : 580
- “치매 상담해 드려요" 북구보건소 ☎ 341-0117~20 생활여건이 호전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제 평균 연령이 71세에 이르는 등 본격적인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 특히 핵가족화 되어가는 가정구조에 따라 노인계층의 입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성 치매환자가 발생한다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따라 구청에서는 노인성 치매환자를 사전에 파악, 효율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3월 8일부터 13일까지 치매노인의 건강상태와 간병실태 및 치료방법 등을 조사내용으로 가정방문을 통한 치매노인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에서 파악된 환자는 모두 36명으로 현재 관내에 약 300여명의 중증치매환자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치에 비교해 볼 때 정확한 현황은 아니지만 처음 시작한 일이라는데 뜻을 두고 별도의 대책을 마련한다. 구청에서는 앞으로 매분기 마다 실태조사를 벌이는 한편 조사된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별도의 관리카드를 만든다. 일반환자에 대해서는 보건소 치매상담센터를 이용한 치매질환 상담 및 치료방법 안내는 물론 자원가사봉사회와의 결연사업도 추진한다. 이밖에 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해서는 치매노인 보호시설 및 요양원 이용 안내 등을 해준다. 홍완식 부구청장은 “세계노인의 해를 맞아 노인복지향상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고령화사회와 더불어 급증하고 있는 치매질환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치매질환 관리대책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밝혔다.치매 예방은 이렇게 치매에는 선비형 치매와 장군형 치매가 있다. 전자를 ‘문치’, 후자를 ‘무치'라 하는데 ‘문치’는 표정없는 침묵으로 꼼짝하지 않거나 괜히 슬픔에 겨워 울기도 하며, ‘무치’는 미친 듯 고함을 지르거나 절규하며 배회하거나 옷을 벗은채 나대고 아무거나 입에 넣으려 한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적절히 지방질과 단백질을 섭취해야한다. 이런 영양소가 뇌의 효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비타민E는 항지질 작용을 하고 니코틴산은 항콜레스테롤 작용을 하므로 이런 성분이 많이 함유된 식품이 필요하며, 포도당 또한 필요하다. 포도당은 뇌의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도당 생성을 촉진하는 비타민B1도 필요하다. 또 레시틴이 많은 식품도 필요하다. 까닭에 호도나 잣 같은 견과류나 동물의 간, 계란 노른자, 잇꽃씨기름, 유채기름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비타민 B1의 흡수를 돕고 활성화시키는 유화아릴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양파도 많이 섭취하도록 한다. 이외에도 카로틴이 풍부한 호박이나 당근, 칼륨이 풍부한 감자나 미역, 말린 무, 표고버섯도 좋고 또한 토마토가 너무너무 좋다. 뇌의 노화를 예방하는 셀레늄을 함유하고 있는 콩, 통밀, 버터, 마늘, 패류, 홍화씨 등도 좋다. 현미, 시금치, 굴, 우유, 뼈째 먹는 생선 등도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늙어 갈수록 더 많이 이해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모든 것을 웃음으로 받고, 두뇌활동과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자료제공 :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1999.03.25 조회수 : 776
- 우리농산물과 수입농산물의 비교 ◎ 일반콩 ◎우리 농산물·껍질이 얇고 깨끗하다.·윤택이 많이 난다.·배꼽 색깔이 검은 낟알이 조금 섞여 있다.·병든 낟알이 많이 섞여 있다.·가로로 잘린 낟알이 거의 섞여 있지 않다.수입 농산물·껍질이 두껍고 거칠다.·윤택이 적게 난다.·배꼽 색깔이 검은 낟알이 많이 섞여 있다.·병든 낟알이 적다.·가로로 잘린 낟알이 섞여 있다.문의: 지역경제과 ☎ 309-4481~4 (담당자 나경석) 1999.03.25 조회수 : 659
-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34 - 개화기 구포와 화명의 민족학교 백 이 성 북구 낙동문화원 원장 사립구명학교(私立龜明學校) 설립 배경구포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로서 구한말 근대화의 물결이 밀어닥쳐와 일찍 개방이 되었던 곳으로서 역사적인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구포는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포구(浦口)로서 일찌기 상업이 번창하고 교역이 성했던 곳이었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선각자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근대문물을 능히 받아들일 수 있는 터전이 되었던 것이다.여기에 발 맞추어 설립된 것이 바로 구포초등학교의 전신(前身)인 구포사립구명학교(龜浦私立龜明學校)인 것이다.구한말, 나라가 약육강식하는 열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침략의 야수를 뻗쳐 오는 강압적 사태 속에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절박한 때를 당하여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위기에 처한 나라의 앞날을 바르게 인식할 줄 아는 슬기를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데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국의 곳곳에서 서당(書堂)의 한문 교육 대신 신학문을 배우는 학교의 설립이 그 지역유지들에 의해 제창되었으니 구포에서도 한 걸음 앞서 뜻 있는 분들의 학교를 세우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던 것이다.한일합병 이전이던 1906년(광무10년) 11월에 관직에 있었던 박형전(朴灐栓-전 참봉), 윤상은(尹相殷-전 주사), 이경화(李敬和-전 군수), 장우석(張禹錫-전 의관) 등을 비롯한 발기인 26명의 이름으로 구포에 사립구명학교를 세울 것을 제창하게 되었고, 지방 인사들이 이에 호응, 자진하여 찬조금을 내어 놓음으로써 탄생을 보게 되었다. 이때 작성한 『구포사립학교 취지서(龜浦私立學校 趣旨書)』와 찬조자들의 『설립기금 기부서』가 현재 구포초등학교에 잘 보관되어 있다.세계의 열강을 바라보는 견지에서 국가와 민족의 교육이 절실함을 제창하고 다 같이 힘을 합해서 학교를 설립하고 이름을 구명학교(龜明學校)라고 부르고자 한다는 구구절절이 민족교육의 긴요함을 역설한 이 취지서는 사양길에 접어들어 어수선한 국가의 운명 앞에서 안타까워 하던 구포지역 유지들의 간절한 소망이 잘 담겨져 있어 당시의 사정을 짐작하게 하고 나아가서 민족이 살길은 교육이라고 외치던 선각자들의 뜻을 살릴 수 있다.그러나 때는 늦었으니 교육이란 단시일내에 그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로 열강의 간섭과 일본의 침략을 이겨낼 힘은 없지만 장차 조국을 이 곤경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취지에서 육영사업(育英事業)을 시작하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구명(龜明)이란 『구자는 신명지족이 사령지일아(龜者 神明之族而 四靈之一也)』의 뜻에서 구명학교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취지서에 밝히고 있다.구포사립구명학교가 문을 열어 1년제 졸업생을 배출하는 가운데 일본의 간계와 압박에 의하여 나라가 망한 뒤에도 계속 교육을 하다가 일정(日政)의 방침으로 공립으로 이관되어 구포공립 보통학교(龜浦公立 普通學校)로 개교하게 되었다.공립학교가 되면서 구포보다 2년 뒤에 설립되었던 화명리(華明里)의 사립화명학교(私立華明學校)와 구포의 여학교였던 사립정명의숙(私立貞明義塾)이 구포공립보통학교로 통합되었다.사립화명학교(私立華明學校) 설립구포와 화명은 일찍부터 개명한 마을로 우국(憂國)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사립학교의 설립을 보게 되었고 학교를 중심으로 민족정신의 정도(正道)를 찾고 있었다.화명동에도 일찍부터 신학문을 받아들여서 구포의 구명학교에 이어 사립화명학교를 설립하였으니 이로써 마을 사람들의 수준과 마을의 재력도 짐작할만한 것이다.사립화명학교(華明學校)는 한일합방이 되기 2년전인 1908년 설립되었으니 구포학교(龜浦學校)가 설립된 2년후의 일이다. 멀지않은 거리에 구포학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화명동에 다시 학교를 세웠다는 것은 기울어가는 국운이 개탄스러운 나머지 민족의 소망을 한갖 교육에 걸었기 때문이다.1908년 6월 이 마을 유지이던 윤명의(尹明儀), 허주(許鑄), 윤대의(尹大儀), 김두호(金斗昊), 최유수(崔有壽), 장진원(張鎭遠), 윤영우(尹永祐), 양기택(楊基澤) 등이 시세(時勢)의 진운(進運)을 깨달은 바 있어 인근 대천(大川), 공창(公昌), 동원(東院), 화잠(華岑), 용당(龍塘), 수정(水亭)의 7개 마을에 학교를 세우자는 의견이 나와 이에 찬동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29일 발기인 대회를 열어 44명이 출석하여 학교를 창립할 것에 합의를 보았다. 다음달 7월 7일에 제2차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고 기금 문제를 의논하여 7개 부락에서 2천18원과 산판(山坂) 12고(庫)를 마련, 기본금을 확보하고 교명(校名)은 사립화명학교(私立華明學校)로 결정하였다.이어서 7월 15일에는 한치유(韓致愈), 부윤(府尹)의 찬도(贊導)를 얻게 되었고 동래군 좌이면 화잠동 적석원(東萊郡 左耳面 華岑洞 赤石員)에 교지(校地) 600여평을 80원에 사서 여기에 교사(敎舍)를 건축하였다. 이런 일은 그 당시의 동세(動勢)에서 보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련했던 기금 중에서 교사건축비(敎舍建築費)와 기구및 비품 구입비로 922원을 지불하고 나니 1천86원이 남았었다.수업연한(修業年限)은 예비과(豫備科) 1년, 본과(本科) 4년, 보습과(補習科) 2년으로 정하고 1908년 11월 20일에 개교식을 거행하였는데 입학생은 모두 50여명 이었다.초대교장에는 윤대의(尹大儀)가 취임하고 감독은 허주(許鑄), 학감(學監)은 김시주(金時柱), 장진원(長鎭遠), 김두호(金斗昊), 교감에는 최유수(崔有壽), 양기택(楊基澤)이 피임(被任) 되었다. 그리고 초대(初代) 교사(敎師)로 문대홍(文大洪)과 김희태(金熙泰)가 청빙(請聘) 되었었다.1910년 3월 30일 제1회 졸업생 3명을 배출, 다음 해에는 제2회 졸업생 7명을 배출하였다. 그동안 교사 윤석우(尹碩佑)가 박수걸(朴秀杰)로 교체, 1911년 4월에는 원(元), 박(朴) 두 교사가 사임하고 윤 경(尹 涇), 임봉래(林鳳來)가 취임하였다. 다음 해에는 이들도 사임하고 최현국(崔鉉國), 양봉근(楊奉根)이 교사로 취임했었다. 윤 경(尹 涇)과 임봉래(林鳳來), 양봉근(楊奉根)은 후일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구포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였다.1911년 4월부터는 학칙에 의하여 화명학교에 보습과(補習科)를 신설하여 여기에 졸업생 중에서 희망자를 수용하였다.이때 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용 도서는 맹자와 산학통편(算學通編), 초등대수학(初等代數學), 고등소학이과(高等小學理科) 등 이다.1913년 4월 3일 보습과 3명, 제3회 본과 3명이 졸업하였다. 보습과는 1914년 7월 7일 자동적으로 폐지되었으며 다음해에는 교장이 윤종의(尹鍾儀)로 교체되어 제5회 졸업생 5명을 사회에 진출시킨 후 1918년 4월 1일 폐교되어 구명학교와 합해져서 구포공립 보통학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그동안 마을에서는 학교 유지(維持)를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이끌어 나온 것은 오로지 향토의 교육열의 덕분이었다.1915년 화명동의 농지확보를 위해 백포(白浦)에 제방(堤防)을 쌓게 되었을 때 학교에서는 해당 지주회의를 학교 직원실에서 열고 학교에서 제언(堤堰)과 수문(水門)의 부설을 부담할 것이니 각 지주들은 그때로 부터 만 10년간에 걸쳐서 매년 벼 40석을 학교에 납부해 달라고 요청하여 쌍방 계약이 성립되고 시역(施役)한 일이 있었다. 백포의 제방은 이렇게 생겼으며 마을의 학교를 유지하기 위한 동민들의 열의와 고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학(私學)에서는 전통적으로 민족사상을 고취하고 항일정신을 일깨웠다.사립화명학교(私立華明學校)가 구명학교(龜明學校)와 함께 구포공립 보통학교(龜浦公立 普通學校)로 통합 출발하게 되었다. 이때 화명동(華明洞)과 금곡동(金谷洞)에 사는 학생들은 길이 좋지않아 나룻배를 많이 이용했는데 통학에 불편이 매우 컸다. 1999.03.25 조회수 : 746
- 구민운동장 - 종합레포츠 공원으로 자리매김 사계절 천연 잔디구장, 테니스장, 배구, 족구, 농구장 자전거 전용도로, 잔디광장, 주차장 구비, 잔디구장, 지난 15일 대우로얄즈와 임대 계약 체결 각종 축구대회 유치, 구민에게 볼거리 제공 새롭게 조성중인 잔디구장 오는 9월경 구민에게 개방 지난 97년 8월, 구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체력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화명동 1740번지 일원에 조성한 구민운동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주변의 수려한 자연환경은 단순히 체력증진을 도모하는 운동장으로서의 기능 뿐 아니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원으로서의 역할도 크게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에서 유일하게 사계절 잔디로 조성된 잔디구장은 축구 전용구장으로 또 2002년 월드컵 및 아시안게임의 보조구장으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 그 활용 가능성이 예측되는 등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가고 있다. 또한 스포츠 시즌인 3월을 맞아 잔디구장 등 운동장 사용 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며 가족, 직장, 단체 단위의 소풍객이 증가하는 등 종합레포츠 공원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현재 1만 6천여평의 구민운동장은 사계절 천연 잔디구장과 테니스장, 배구, 족구, 농구장과 자전거 전용도로, 잔디광장 및 약 350대를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구비되어 있다. 또한 3천500평에 달하는 잔디광장과 100본의 녹음수로 말끔히 단장되어 있어 인접한 낙동강과 연계된 친수공원으로서도 이용가치가 높다. 아울러 오는 9월말까지 나머지 일반구장도 잔디구장으로 조성되며 조깅트랙과 화단도 설치된다.특히 2면의 축구장 가운데 지난해 10월, 부지 조성비와 잔디 파종비 등 3천 8백여만원을 들여 조성한 사계절 천연잔디구장이 축구계 관계자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9일에는 월드컵 조직위 관계자들이 잔디구장을 방문한데 이어 대우로얄즈 관계자들도 지난 1월 29일 국제규격의 잔디구장을 둘러본 뒤 구장여건에 대해 호평을 하면서 전용 연습구장으로서 사용하면 좋겠다며 년간 임대 계약을 희망했다.이에따라 구청은 그동안 심도있는 검토 끝에 년간 임대키로 결정을 내리고 지난 15일 대우로얄즈와 3천600만원에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구민운동장은 구 재정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유명 프로팀의 전용구장으로서 대내·외적인 이미지 상승과 함께 유명선수들의 경기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장점 등으로 그 명성을 더해 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구민을 위해 조성한 구민운동장을 특정단체에 전용케함은 상대적으로 구민의 잔디구장 사용 기회가 제한되지 않느냐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서 구청 관계자는 현재 공공근로사업으로 새롭게 조성중인 잔디구장이 오는 9월경이면 개방돼 구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나아가 각종 축구대회를 유치, 구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 오히려 구민에게 편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체력단련 및 여가선용을 위해 하루 평균 30여명이 찾는 구민운동장은 자연학습장으로도 인기가 높은데, 가족단위나 개인 등 구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새봄을 맞아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잔디광장을 찾아 자연을 호흡하고 체력과 여가를 즐기며 구민운동장을 우리 스스로 찾아 가꾸어 나가는 것도 값진 일일 것이다. ·문의 ☎309-4124 (총무과 진흥담당 김용대) 1999.03.25 조회수 : 629
- 구포장터 3·1만세 운동 재현 구포장날을 맞아 구포지역 청년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구포장터 3·1만세 운동」이 지난 3월 13일 오후 1시30분부터 구포역 일대에서 80년만에 재현되었다. 1919년 3월 29일 구포장날을 기해 일어난 이른바 ‘구포장터 의거'는 학생, 종교인, 유림 등이 주도한 타 지역의 3·1운동과는 달리 농민, 상인, 노동자 등 구포지역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된 순수 민간주도 운동으로 단순시위보다 저항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청은 우리고장에도 3·1운동에 참여한 역사가 있다는 자긍심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심어주고 IMF 극복정신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구민들의 의지를 집결하기 위해 이번에 첫 행사를 가졌다. 13일 오후 1시30분부터 옛 구포장터였던 구포역 일대에서 펼쳐진 이 행사에는 당시 구포의거 참가자 후손 등 독립 유공자 20가족을 포함한 주민 등 3천50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 참가자들은 구포여중에 모여 출정식을 가진 뒤 집결지인 구포역을 향해 3개조로 나눠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참여 인파로 가득 메운 구포역 광장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독립유공자 대표의 만세삼창에 이은 그 당시 애국지사들의 활동상을 재현한 주재소 습격 장면인 단막극을 펼쳐 행사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어진 3·1운동 기념비 앞에서의 만세삼창과 구포지역 3·1운동 증언 및 3·1절 노래의 합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은 3월 1일 서울의 독립만세 시위 소식과 아울러 인근 부산, 동래의거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다니던 양봉근과 구포면 서기 임봉래 등이 거사할 뜻을 모으고 구포장날인 3월 29일(음력 2월 28일)을 기해 독립만세를 일으켰다. 이날 정오 구포장터는 대한독립만세 소리와 태극기의 물결로 삽시간에 흥분과 감격의 도가니로 변하였다. 이에 놀라 허겁지겁 시위 현장으로 달려온 일경은 김옥겸외 11명의 주동인물을 체포하여 구포주재소에 구금했다. 이를 본 군중들은 격분해 주먹과 곤봉으로 주재소의 유리창을 파괴하며 돌을 던졌다. 특히 장을 보러왔던 김해, 양산, 동래 등 외지 사람들도 북받쳐 오르는 민족적 의분으로 끝까지 행동을 같이했다. 주동 인물 중 가장 연세가 많았던 윤정은(尹正殷)은 당시 68세로 징역 1년 3개월을 받아 옥살이를 하다가 옥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행사의 이모저모 *…이번 행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무려 3천500여명의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점차 잊혀져가던 그날의 함성을 만방에 알린 뜻깊은 행사였다는게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중론. *…집결지인 구포여중에서는 만장기와 태극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홍완식 부구청장의 개막선언과 3·1동지회 북부지회장의 만세삼창 및 부산지방보훈청장의 출정선포가 잇달았다. *…출정선포가 있자 제1그룹은 구포1동사무소에서 구포역으로, 제2그룹은 구포시장 샛길에서 구포역으로 또 제3그룹은 구포대교에서 구포역을 향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거리를 행진. *…태극기의 물결과 만세소리로 가득 메운 제2부 행사인 구포역 광장에서는 권 익 구청장의 인사말씀, 정형근 국회의원의 격려말씀,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 주재소 습격 재현으로 이어졌다. 특히 80년전 그날의 만세운동을 단막극으로 재현한 주재소 습격 장면은 각 언론사에서도 열띤 취재 경쟁을 벌여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임을 실감케 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김민주 학생은 “우리고장에도 3·1만세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행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며 긍지를 갖게 돼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정신과 질서의식은 수준급이었다는게 행사 관계자의 말이다. *…3부 행사인 3·1운동기념탑 앞에서는 이종택 구의회 의장의 인사말씀과 광복회 부산광역시 지부장의 구포지역 3·1운동증언, 3·1절 노래합창과 지역원로 및 우리지역시·구의원의 우렁찬 만세삼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99.03.25 조회수 : 673
- 제6회 모범구민상 효행부문 최정애씨 “시어머니 모시더니, 이제는 친정 어머니네. 요즘 사람 아니야!.”3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양학수씨와 혼담이 오갈 때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이북 원산에 대부분의 가족을 두고 중풍의 홀어머니와 단칸방에 사는 총각을 신랑으로 받아들인 것은 장성한 아들이 수족을 못 쓰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모습과 그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애처러워 보였기 때문이라 한다. 중풍의 시어머니와 함께 단칸방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천성이 온순하고 부지런한 성격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풍체가 좋은 남편과 식성이 좋아서 최정애씨 보다 두배에 가까운 체구의 시어머니의 빨래감만 해도 새색시에게는 큰 일감이었다. 특히 상추쌈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며느리가 싸서 입에 넣어주는 데로 그저 맛이 일품이라 하셨다. 피붙이라고는 아들 한명 뿐인 어머니를 최정애씨가 아니면 누가 거두겠는가? 라는 생각에 애처러운 마음이 한결 같았다. 날이 갈수록 스스로 터득한 요령이 있었다. 어머니의 등뒤에서 배를 두 팔로 감싸안는다. 두 팔에 힘을 주어 어머니의 몸을 살짝 들어 오른발로 요강을 밀어 용변을 보시게 했다. 매일 씻어 드린다 해도 손발에 때가 오르면 최정애씨는 등 뒤에서 두 손에 막대기를 잡고 그 위에 어머니를 앉게 하신 다음 업고 목욕탕으로 걸어갔다. 손재주가 있는 최씨는 직접 접은 빨간 종이 카네이션을 어머니의 가슴에 달아드리고 절을 올리면 제일 많이 우셨다 한다. 결혼한지 8년만에 드디어 합판으로 지은 내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착실하게 해온 남편의 힘과 결혼 때 받은 목걸이를 처분하여 샀던 밭을 틈틈이 일구어 얻은 결과이기도 했다. 사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목수가 덤으로 방 한칸을 더 넣어주어 두 칸의 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따로 모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옆방으로 옮기시는 것이 섭섭다 하시어 보름동안이나 빈방을 옆에 두고 아이들 네명과 함께 생활했다. 20여년을 한결같이 모셔온 최정애씨의 생활에 무슨 잘못을 찾아 내겠는가? 가끔 성당에 가서 고백성사(천주교 신자가 하는 죄의 고백)를 본 후에 다시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 79세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6개월 동안 고백성사도 볼 수 없을 만큼의 죄인이 되어 있었다. “조금 더 잘해 드릴걸.” 어머니께 잘 못해 드린 기억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아내를 보고는 집안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모조리 감추기에 이르렀다. 세월이 흘러 네자녀를 훌륭히 교육시켜 모두 출가시켰고 두 부부가 살아가기에 어렵지 않는 재산도 모았다. 그러나 빚보증을 잘못하여 재산을 몽땅 날리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28평의 집은 남게 되었지만 그 충격으로 두 부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게 되었다. 봉사활동하는 남편의 수입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오고있다.그러던 중 5년 전 중풍으로 친정 어머니마저 쓰러지자 친정 어머니를 이웃으로 모셔왔다. 시어머니와는 달리 잘 잡수시지를 않는다. 치매까지 겹쳐 온갖 욕설은 참아낼 수 있지만 드시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죽을 쑤어 빨대로 입에 불어넣어 드린다. “어제는 몇 모금 드시더니 오늘 기력은 좀 나으시네.” 89세의 노모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다. 연약한 노모이지만 60세를 바라보는 딸에게는 힘이 부친다. 휠체어에 모시어 목욕탕에 간다. “시어머니 모시더니, 이제는 친정 어머니네. 요즘 사람 아니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둘째 아들이 카톨릭 신학대학에 입학한 것을 은근히 물어 보았다. “한번도 신부 되라고 한 적은 없어요. 평생 동안 할머니께 대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남에게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고맙지요. 저 사람은 천성이 착한 사람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하는지, 남겨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자살을 선택한 부모이야기며, 치매의 부모가 부담스럽다고 버리고 도망가는 자식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상이라면 오히려 부담없이 받겠다며 효부상은 당치도 않는다는 최정애씨. 어렵게 만든 자리에 함께 해주신 최정애씨에게 다시한번 감사 드린다. <박영희 명예기자> 1999.03.25 조회수 : 675
- 1회용품 사용규제 확대 시행 그 이후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 필요”10평이상의 매장에서는 1회용 봉투나 쇼핑백의 무상 제공 금지, 모든 음식점에서는 1회용 컵, 접시, 나무젓가락 사용 금지, 목욕탕과 숙박업소는 1회용 면도기, 칫솔, 치약, 샴푸, 린스 사용 금지매장규모 30여평인 구포3동 D유통. 라면 몇개와 담배 한갑을 계산대에 올리고 나니 점원의 표정이 이상하다. 비닐봉투에 담아줄 생각은 않고 쭈뼛쭈뼛 손님의 눈치를 본다. 아하, 그제서야 손님은 알아채고 라면과 담배를 손에 들고 매장을 나선다. 그러자 안도감마저 느껴지는 점원의 목소리, ‘손님, 죄송해요. 담아드리기 싫은 게 아니라 1회용품 사용규제 때문에…’지난달 22일 1회용품 사용금지가 대폭 확대된 이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실 이러한 1회용품 사용규제는 고객과 점원 모두에게 익숙치 않는 일로 시행 한달이 지난 현재까도 쉽사리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동네사람들을 주고객으로 삼아야 하는 소형매장에서는 1회용품 사용금지를 이유로 뻔히 아는 손님에게 박하게 굴 수가 없는 실정이다.대형매장인 화명동 L마트의 경우는 다소 양호하다. L마트에서는 장바구니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고객에게 소액의 보증금(1,000원)을 받고 장바구니를 대여하고 있다. 물론 장바구니를 되돌려 주면 보증금은 환불된다. 그러나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고객은 아직까지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루 고객이 2천 5백명 정도라는 이 매장에서 장바구니 대여자는 10~15명 수준이라는 게 매장 관계자의 설명이다.대다수의 고객들은 불편함을 이유로 한 개에 10원, 20원씩 하는 비닐봉투를 사용한다. 비닐봉투 판매가격이 400원, 800원인 독일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너무 형식적인 가격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몇몇 대형매장에서는 장바구니 사용고객에게 포인트를 주고 일정 포인트를 적립하면 사은품을 증정하기도 한다.1회용품 사용금지 대폭 확대의 배경이 된 관계법령의 정확한 명칭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시행규칙」, 99년 2월 22일 공포 시행된 이 규칙에 따라 10평이상의 매장에서는 1회용 봉투나 쇼핑백의 무상 제공이 억제된다. 아울러 모든 음식점에서는 1회용 컵, 접시, 나무젓가락이 사용 금지되며, 목욕탕과 숙박업소에서는 1회용 면도기, 칫솔, 치약, 샴푸, 린스의 사용이 금지된다. 밀봉포장을 하여 장기유통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식품관련업계의 1회용 합성수지 도시락의 사용도 규제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행이 미진한 것은 역시 1회용 비닐봉투 사용 억제이다. 따라서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부산시민 운동협의회’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장바구니 보급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시민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한 실정이지만 환경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감안해 볼 때 장바구니 사용 정착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보여진다.“그래도 매스컴의 영향때문인지 많이 좋아지는 추셉니다. 일이십원 짜리 비닐봉투 팔아 장사하려고 하느냐고 불평하시는 손님도 있었지만, 한번에 장바구니를 두개나 대여해 가는 적극적인 손님도 계셨으니까요.” L마트 장학재 부점장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정력이 일시에 모든 대상업소에 미칠 수는 없는 만큼 자발적인 실천과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모든 일에는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 시행 초기 적잖은 혼란을 불러 일으켰던 쓰레기 종량제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1회용품 사용규제’도 멀지않은 장래에 정착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정윤재 명예기자> 1999.03.25 조회수 : 608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