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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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영화 ‘오징어 게임’이 소환한 추억

  • 2022-01-07 15:37:48
  • 정영미
  • 조회수 : 1060
한동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를 흔들었다. 드라마 내용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의 게임만으로도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지인들과 오징어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당시의 놀이 용어가 제각각이었다. 언쟁 아닌 언쟁이 있은 후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옛날을 그려 보았다.
이 놀이를 우리 동네에선 오징어 달구지라고 불렀다.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깍두기’는 같은 부산이라도 이름이 달랐다. 깍두기라고 불렀던 동네도 있은 것 같은 데 우리 동네에서는 건달꾼이라고 불렀다. 이 건달꾼은 주로 동네에서 체력이 약하거나 놀이에 참여한 아이의 어린 동생들이 맡았다. 동생도 돌보면서 놀이도 하고 일석이조였던 셈이다. 물론 힘이 센 녀석들이 건달꾼을 하겠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이 그 녀석의 몫이었지만 건달꾼은 대부분 동생들 차지였다.
오징어 달구지는 동네 어귀 공터에서 하고 놀았다면 구슬치기는 흙바닥이 있는 아무개네 마당에서 했다. 흙바닥에 구멍을 파거니 삼각형을 그려 놓고 놀았다. 그 옆의 작은 공터에서는 여자애들의 고무줄뛰기가 한창이었다.
‘달고나’는 쪽자라고 불렀다. 매캐한 연탄가스를 맡으며 둘러앉아서 바늘로 찔러가면서 별 등 다양한 문양을 오려내곤 했는데 성공을 기원하며 입맛을 다시곤 했는데 한류 바람으로 세계인들이 그 쪽자에 빠져 있는 걸 보니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계절에 따라 놀이가 달랐고 이사 온 아이들이 생기면서 조금씩 진행 방식이 바뀌기도 하였던 같다. 이 모든 놀이는 담이 없는 집의 마당에서나 흙이 있는 골목에서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담이 없는 집이 없다. 마을 골목길도 사라지고 뛰어놀 아이들도 없다. 흙도 없다. 지금은 침대 위에서 휴대폰을 손에 든 아이가 있다. 영롱한 눈망울로 휴대폰을 응시하며 웃음 짓는 아이들만 있다.
그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며 오징어달구지 한판 해 보고 싶다. 흙바닥에서 한번 신나게 뒹굴고 싶다.

김도형 / 구포동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