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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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 오래된 편지들을 정리하며

  • 2022-01-07 15:36:31
  • 정영미
  • 조회수 : 1017
이사하면서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옛날 편지들을 정리하려고 꺼냈다.
오래 전 일이라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지금 보면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심각하고 절박했을 것이다.
지난 편지들을 읽는다는 건 부끄러움과 마주하는 느낌이다. 나이에 어울리는 고민이었겠지만 지나고 보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그 편지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결혼 초기까지의 15~6년간의 나의 성장 과정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이었다.
중학교 때는 집전화도 귀했던 시절이라 자연히 편지가 주된 통신수단이었다. 친구와 다투었을 때는 사과와 화해의 도구가 되었고, 마음에 담아 놓은 깊은 얘기를 털어놓는 장(場)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의 편지를 보니 2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왔던 미술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가 제법 많았다. 그 때 선생님은 어떤 계기로 인해 거의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나와는 꽤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았던 걸 보면 여고생의 고민에 인생 선배로서, 언니로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대학 4학년 교생실습 때 중학교 3학년 반을 맡았는데 그 학생들과는 결혼 후에도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때 학생들도 나름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을 텐데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줬을까? 그들도 이젠 50대의 중년 아저씨들이 되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새삼 내가 보낸 편지의 무게감이 느껴지며 내가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등대 역할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사소한 것이라도 뭔가를 끄적거려야 하는 성향이라 알맹이 없는 말로 채워진 편지들이었지만 그 때 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나는 내가 지나온 모든 순간순간에서 맺었던 인연들과 먼 훗날 우연히 마주쳤을 때 결코 부끄럽지 않는 모습이기를 바라며 꽤나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 잘산 것 맞겠지?

박경혜 / 화명동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