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당산나무 전설을 듣고
- 2024-12-26 16:49:53
- 정영춘
- 조회수 : 587
당산나무 전설을 듣고
한때 글쓰기에 관심이 생겨 여기저기 관계되는 곳에 고개를 기웃거리고 다녔다. 어느 날 북구 구포동에 있는 장선종합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다. 한글중급반 강사가 갑자기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왕이면 가르치며 배운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실천 철학인 나의 마음가짐과 맞닥뜨려 당장에 수락의 대답을 하고 어르신들을 뵙게 되는 기대감에 들뜨게 되었다. 여덟 분의 나이 지긋하신 마을 주민들은 나를 편안하게 맞이해 주셨다. 그런데, 첫 시간에 나는 아주 당황하게 창피를 겪는 경험을 하였다. 복지관에서 준 교재는 옛 민담과 구전 소설 등을 묶어 편집해 놓은것인데, 어휘들이 처음 보는 생경한 것들이었다. 다음 문장에서의 양주라는 단어에 대한 나의 해석은 어르신들을 웃게 만들어 버렸다.
‘돌아온 두 양주 귀신이 제사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티격태격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도 양주가 있었습니까?”
“양주는 무슨 양주고? 막걸리도 겨우 숨겨가며 먹었는데….”
“술을 몰래 먹었습니까?”
“우리 시절에는 국가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니 누룩을 숨기곤 했었다.”
“그러면 이 책이 잘못 편집된 것입니까?”
“그때는 양주가 없었지 않습니까?”
“없었지! 여기 양주는 양 주인을 말해요. 바깥주인과 안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아! 쥐구멍이 어디 있는지 찾고 싶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나를 위로하듯 끝나는 시간은 서둘러 다가왔고, 도망치듯 복지관을 나왔다.
두 번 다시 무안을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교안 작성에 최선을 다하며 수업 진행을 하였다. 교재에 나오는 민담의 내용이 충청도 지역 위주로 되어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구석에서 밀고 올라오던 어느 날, 80대 어르신께서 어릴 적 자주 들었던 마을 전설을 한 토막 하시겠다고 제안하셨다. 2009년에 지정된 구포당숲의 당산나무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의 옛 어르신들의 삶의 서글펐던 편린을 간접적으로 엮어보게 되었다.
“구포초등학교 근방에서 서로 사랑을 하는 처녀 총각이 있었습니다. 총각이 과거 급제를 위해 한양으로 떠나며, 처녀와 자주 보던 그 곳에 팽나무를 심었습니다.”
“팽나무가 잘 자라면 총각은 자신이 과거에 급제하리라 믿었습니다. 일종의 정표(情表)였지요. 그래서 아가씨는 정성을 다해 돌보고 팽나무가 잘 커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같은 마을에 사는 부자집 아들이 처녀를 연모하고 있어서 사람을 시켜 그 총각을 죽입니다.”
“처녀는 전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팽나무를 튼실하게 키우는 데만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러던 중 총각이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처녀는 괴로워하다가 옆 나무에 목매어 자살합니다. 그 팽나무와 연리지가 됩니다.”
“그래서 당산나무가 된 것입니까?”
“그 이후 마을에 연이어 여러 해 재앙이 덮칩니다. 질병이 창궐하고 화마가 휩쓸고 장마가 들어 마을 가축을 쓸어버립니다. 이에 마을에서는 두 처녀 총각을 결혼시키는 명혼식(冥婚式)을 열어주고 매년 당산제를 올렸습니다.”
어르신들은 마을 역사의 산 증인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늙은 말의 오래된 경험은 수많은 병사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생명을 구하게 해주었다는 옛 고사가 있다. 지금은 길이 없으면 새로 만들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있는 길을 제대로 찾아 이용하게 하고 주변의 환경을 가능한 한 파손시키지 않는 지혜도 무시 되어서는 안된다. 그분들의 흔적을 최선을 다해 보존하고 보전시켜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갑진년을 보내며 가져 본다.
강성용 (명예기자)
한때 글쓰기에 관심이 생겨 여기저기 관계되는 곳에 고개를 기웃거리고 다녔다. 어느 날 북구 구포동에 있는 장선종합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다. 한글중급반 강사가 갑자기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왕이면 가르치며 배운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실천 철학인 나의 마음가짐과 맞닥뜨려 당장에 수락의 대답을 하고 어르신들을 뵙게 되는 기대감에 들뜨게 되었다. 여덟 분의 나이 지긋하신 마을 주민들은 나를 편안하게 맞이해 주셨다. 그런데, 첫 시간에 나는 아주 당황하게 창피를 겪는 경험을 하였다. 복지관에서 준 교재는 옛 민담과 구전 소설 등을 묶어 편집해 놓은것인데, 어휘들이 처음 보는 생경한 것들이었다. 다음 문장에서의 양주라는 단어에 대한 나의 해석은 어르신들을 웃게 만들어 버렸다.
‘돌아온 두 양주 귀신이 제사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티격태격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도 양주가 있었습니까?”
“양주는 무슨 양주고? 막걸리도 겨우 숨겨가며 먹었는데….”
“술을 몰래 먹었습니까?”
“우리 시절에는 국가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니 누룩을 숨기곤 했었다.”
“그러면 이 책이 잘못 편집된 것입니까?”
“그때는 양주가 없었지 않습니까?”
“없었지! 여기 양주는 양 주인을 말해요. 바깥주인과 안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아! 쥐구멍이 어디 있는지 찾고 싶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나를 위로하듯 끝나는 시간은 서둘러 다가왔고, 도망치듯 복지관을 나왔다.
두 번 다시 무안을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교안 작성에 최선을 다하며 수업 진행을 하였다. 교재에 나오는 민담의 내용이 충청도 지역 위주로 되어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구석에서 밀고 올라오던 어느 날, 80대 어르신께서 어릴 적 자주 들었던 마을 전설을 한 토막 하시겠다고 제안하셨다. 2009년에 지정된 구포당숲의 당산나무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의 옛 어르신들의 삶의 서글펐던 편린을 간접적으로 엮어보게 되었다.
“구포초등학교 근방에서 서로 사랑을 하는 처녀 총각이 있었습니다. 총각이 과거 급제를 위해 한양으로 떠나며, 처녀와 자주 보던 그 곳에 팽나무를 심었습니다.”
“팽나무가 잘 자라면 총각은 자신이 과거에 급제하리라 믿었습니다. 일종의 정표(情表)였지요. 그래서 아가씨는 정성을 다해 돌보고 팽나무가 잘 커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같은 마을에 사는 부자집 아들이 처녀를 연모하고 있어서 사람을 시켜 그 총각을 죽입니다.”
“처녀는 전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팽나무를 튼실하게 키우는 데만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러던 중 총각이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처녀는 괴로워하다가 옆 나무에 목매어 자살합니다. 그 팽나무와 연리지가 됩니다.”
“그래서 당산나무가 된 것입니까?”
“그 이후 마을에 연이어 여러 해 재앙이 덮칩니다. 질병이 창궐하고 화마가 휩쓸고 장마가 들어 마을 가축을 쓸어버립니다. 이에 마을에서는 두 처녀 총각을 결혼시키는 명혼식(冥婚式)을 열어주고 매년 당산제를 올렸습니다.”
어르신들은 마을 역사의 산 증인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늙은 말의 오래된 경험은 수많은 병사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생명을 구하게 해주었다는 옛 고사가 있다. 지금은 길이 없으면 새로 만들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있는 길을 제대로 찾아 이용하게 하고 주변의 환경을 가능한 한 파손시키지 않는 지혜도 무시 되어서는 안된다. 그분들의 흔적을 최선을 다해 보존하고 보전시켜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갑진년을 보내며 가져 본다.
강성용 (명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