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의회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②>
- 2024-05-28 13:08:07
- 문유진
- 조회수 : 761



대리마을·남창리·본동, 낙동강 중심으로 번창
◇대리(大里) 마을=구포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다. 주산인 주지봉(蛛蜘峰)에서 말등고개, 영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당산나무가 있는 곳이 구포지역의 모태(母胎)가 되는 대리마을이다.
큰 대리는 대리천 동북쪽인 당산나무 아래 산비탈을 끼고 형성되어 오르막길이며, 작은 대리는 대리천 남서쪽인 낮은 지대인 평지에 전답과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구포초등학교와 유보라아파트 등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말 대리천 홍수로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자 양산군수 이유하가 1809년 제방을 쌓아 구포 주민들의 숙원을 해결하자 백성들이 이유하 군수의 공덕비를 세웠다.
현재 ‘구포대리천 제방쌓기’ 민속놀이와 매년 제방 건설기념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2024년 4월 22일 제215주년 기념제를 구포1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지냈다.
또한 2009년에 당산나무인 팽나무와 소나무 등 전체가 ‘구포당숲’이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309호로 지정되어있다.
◇남창리(南倉)=낙동강의 요지인 남창마을은 감동창을 운영하다 양산군의 남사창을 옮겨오면서 남쪽에 있는 창고라는 뜻으로 ‘남창’이라 불렀으며, 위치는 현재 구포 동원로얄듀크비스타아파트 일대이다.
당시 300여 호의 가옥이 있었으며 장날이면 조운선과 생필품을 실은 배가 100여척씩 드나들었다. 교역을 마친 물품들은 낙동강 상류지역인 왜관, 상주, 안동 등으로 올라가는 등 외지에서 찾아든 사람들로 도회지를 방불케 하였다.
◇본동(本洞)=구포역전 일대의 마을로 근대화 과정에서 구포의 새로운 본거지가 되었다.
1903년 경부선 공사로 구포에 기차역이 건립되고 1905년 개통되었다. 구포역사(驛舍)를 중심으로 차도, 상가, 여관, 의료시설, 우체국, 정미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번창하였다. 1930년대 낙동강 제방이 축조되고 구포다리가 가설되면서 은행(현 우리은행), 주재소, 헌병대 등 공공시설이 들어섰다.
또 정미소에서 도정(搗精)된 쌀이 전국 각지와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부산시내, 김해, 진해, 마산 등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번잡한 도심지가 되었다.
지금은 도시철도와 KTX열차의 운행으로 서부경남과 북부산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구포는 여전히 부산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김동국 / 낙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소장
◇대리(大里) 마을=구포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다. 주산인 주지봉(蛛蜘峰)에서 말등고개, 영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당산나무가 있는 곳이 구포지역의 모태(母胎)가 되는 대리마을이다.
큰 대리는 대리천 동북쪽인 당산나무 아래 산비탈을 끼고 형성되어 오르막길이며, 작은 대리는 대리천 남서쪽인 낮은 지대인 평지에 전답과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구포초등학교와 유보라아파트 등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말 대리천 홍수로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자 양산군수 이유하가 1809년 제방을 쌓아 구포 주민들의 숙원을 해결하자 백성들이 이유하 군수의 공덕비를 세웠다.
현재 ‘구포대리천 제방쌓기’ 민속놀이와 매년 제방 건설기념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2024년 4월 22일 제215주년 기념제를 구포1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지냈다.
또한 2009년에 당산나무인 팽나무와 소나무 등 전체가 ‘구포당숲’이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309호로 지정되어있다.
◇남창리(南倉)=낙동강의 요지인 남창마을은 감동창을 운영하다 양산군의 남사창을 옮겨오면서 남쪽에 있는 창고라는 뜻으로 ‘남창’이라 불렀으며, 위치는 현재 구포 동원로얄듀크비스타아파트 일대이다.
당시 300여 호의 가옥이 있었으며 장날이면 조운선과 생필품을 실은 배가 100여척씩 드나들었다. 교역을 마친 물품들은 낙동강 상류지역인 왜관, 상주, 안동 등으로 올라가는 등 외지에서 찾아든 사람들로 도회지를 방불케 하였다.
◇본동(本洞)=구포역전 일대의 마을로 근대화 과정에서 구포의 새로운 본거지가 되었다.
1903년 경부선 공사로 구포에 기차역이 건립되고 1905년 개통되었다. 구포역사(驛舍)를 중심으로 차도, 상가, 여관, 의료시설, 우체국, 정미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번창하였다. 1930년대 낙동강 제방이 축조되고 구포다리가 가설되면서 은행(현 우리은행), 주재소, 헌병대 등 공공시설이 들어섰다.
또 정미소에서 도정(搗精)된 쌀이 전국 각지와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부산시내, 김해, 진해, 마산 등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번잡한 도심지가 되었다.
지금은 도시철도와 KTX열차의 운행으로 서부경남과 북부산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구포는 여전히 부산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김동국 / 낙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소장





